낙수소리

한밤 새벽부터 시작한 비가 처적처적 내리더니, 이제 소리가 제법 크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그 영향인가 보다.

그리고 보니 바람도 함께 섞여있다.

뒷 건물의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낙수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비가 더 온다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지 않아도 비의 양을 알 수 있다.

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대문 앞 보안등만이 이 빗속에서도 추운 잠을 졸고 있을 뿐 일 것이다.

나도 이렇게 깨어있는데, 그 등은 벌써 깨어있을 것 이다.

지켜야 할 것도 없는데...

그 불빛에 비켜 내리는 빗줄기는, 이제 바람과 함께 거의 사선이 될 것이다.

창문을 열어 보기가 싫다.

그 빗줄기는 나까지 사정없이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가 개고나면 추워질 것이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았다고들 하지만, 난 이미 깊은 가을을 앓고 있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틀림없이 겨울을 부른다.

그래서 창을 열어서 확인하기가 두려운 것일 것이다.

소리는 함께 계절을 옮겨 온다.

특히 가을의 소리에는, 바람에는 북풍소리가 들린다.

벌써 겨울이 걱정스럽다. 특히 올 겨울이....

빗소리는 잦아졌다.

그 대신 바람소리가 밀려오고 있다.

마치 한여름 소나기가 달려오는 소리처럼, 바람이 흘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에 춥다.

낙수소리는 한때는 낭만이었고, 이제는 슬픔이었다.

나른한 오후에나, 피곤한 저녁에 들리는 소리는 자장가이고,

가을 깜깜한 칠흑의, 아직 새벽도 아닌 새벽에 들리는 소리는 슬픔이다.

낙수소리에 아버지가 계신다. 함께 엄마도!

어린 시절 양철지붕을 요란하게 때리는 소리를 듣다, 그 시끄러움이 멋진 자장가로 들릴 즈음이면 나는 꿈속의 왕자가 된다.

온 들판을 쏘다니며 신나게 달리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소리 지르며 눈을 뜨면 여지없이 사타구니가 축축하다.

놀라고 창피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면, 빨리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라신다.

일어나보면 이제 저녁이 시작 된다.

낙수소리에 깊은 오수를 즐겼던 것이다.

다시 들리는 소리에 그 분들이 떠오르며, 자라고 있는 내가 보이며, 올 겨울이 걱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