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공보다 더 멀리 날던 시절 2

이리 귀금속공단에는 수십 개의 귀금속 가공공장들이 있었다.

물론 이중에는 몇 개의 원석 수입회사도 있었고, 나머지는 거의가 노동집약적 영세 하청업체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회사는, 작은 작업장에 직원이라야 십여 명부터 수십여 명 정도 규모의 회사들로서 영세 소규모의 귀금속 가공업체들이었다.

금이나 은처럼 흔한 귀금속은 물론 다이아몬드까지, 설계된 디자인에 의하여 일단 수작업으로 정밀한 가공을 거쳐 반지나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영세 소규모 업체들의 집합단지라고 생각하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몇 사람을 제외하면 사장이래야 작은 하청업체 사장들 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자기 공장들을 영세하게나마 가지고 있지만, 작업의 특성상 모두가 숙련된 기능공들의 손에 의하여 공정이 이루어지므로 숙련공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바로 그들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한 울안에 작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숙련공 확보경쟁이 대단히 심했다.

원청회사에서 가공 전의 덩어리 원석을 받아와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재단을 하여, 낭비되는 분량을 최대한 줄여서 얼마만큼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가가 이들의 기술이었고 또 수입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하청사장들은 원석을 재단하는 재단사 출신들이었다.

내가 다닌 공장은 큐빅을 가공하여 큐빅 알맹이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귀금속공단은 작업의 특성상 앉아서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 같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장애인들의 작업장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나도 취업을 할 수 있었으며, 일종의 장애인 특화 사업체 들이 있어 정부는 그것을 마치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인 것처럼 자랑하며 선전을 하였고, 장애인들 역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장들의 입장에서는 장애인들을 고용한다는 자존심과 또한 장애인들은 이직률도 높지 않기 때문에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부리기 쉬워서 편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작업환경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열악해도, 장애인들이든지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수용하기에는 큰 문제꺼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에도 많은 비장애인을 포함하여 지체장애인들을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농아들은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를 않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취약한 영세 노동집약적 사업장에서는 가장 부리기 쉬운 사람들이 장애인들이었고 장애인들 역시 자기가치라는 것은 염두에 둘 수 없는 삶이었으므로 이렇게라도 먹고 살 수 있고 아침에 출근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였으며, 감히 노동착취 같은 고급의 인권적 개념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업장에는 작업 테이블위에 절삭과 연마를 하기위한 모터들이 각자 놓여있고, 원석을 재단하여 스틱에 물린 가공 전의 물건들을 수령하여 절삭기에서 일차 절삭을 한다.

큐빅은 고가의 귀금속은 아니어서 각 면의 기울기 각도나 편평률의 정밀성은 다이아몬드나 다른 귀금속에 비하여는 엄격히 요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단한 경도의 돌이어서 그것보다 더 강한 경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절삭 판에 물을 떨어뜨려가며 고정된 각도로 핸들링을 하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크레치가 생기든지 크랙이 가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한 급수장치가 되어있는 것이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경화강판에 원석을 커팅 할 때의 소음과 분진은, 아무리 냉각수를 점점이 떨어뜨리며 자른다고 하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돌먼지가 날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일차 커팅을 한 중간 가공품은 그것보다 약간 각도가 낮은 부드러운 연화강판으로 교체하여 광택제를 발라가며 각 면마다 바꿔가며 광택을 내야한다.

이 과정에서 손과 얼굴은 푸른 강시 모양의 반송장 모습이 되는 것이다.

흰색의 파우더인 광약이라 불리는 연마제는 어떤 화학성분인지는 모르지만, 광판에 발라 원석을 연마하면 검 푸른색 걸쭉한 겔 상태가 되어 회전하는 스틱에 따라 튀어 얼굴이나 손에 묻는 것이다.

우리가 구두를 닦을 때 헝겊에 구두약을 묻혀 구두의 떼를 일차 닦아내고, 그 다음에 광택제를 묻혀 열심히 반짝거리게 광을 내는 작업이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거의 비슷할 것이다.

이 성분이 좋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알았던들 바뀔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럴게 일하다가 중식을 제공하는 작업장에서는( 모든 공장이 전부 점심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밥을 먹고 나와 노는 꼴들이, 얼굴도 손도 시퍼런 대낮의 공동묘지 공놀이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리 귀금속공단에는 나이가 어린 사내, 계집아이들도 많았다.

국민학교만 마치고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체 사회에 떨쳐져 팽개쳐진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이 손재주와 눈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지적작업이 아닌 단순작업의 일이므로 하나 둘 소리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들었으며, 사장들은 미성년 여부보다는 노동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이들을 흡수하였고.....

그 아이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뼈가 굵어가고, 그렇게 바닥의 주인공들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바닥에는 성을 비롯한 도덕적 문제와 전체의 흐름이 단순하고 무지하고 폭력적인 우범지역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는 무조건 형님 동생으로 나이 터울이 있을 리가 없고, 숙련이 되어 공장 밥을 누가 더 먹고 한 시간에 깎는 양이 얼마나 되는가의 순위가 이 바닥의 보이지 않는 서열인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녀석이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저씨라고 부른다.

참 생소하고 신선한 느낌의 호칭이었다.

아저씨라는 호칭이 싫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말이 신선했으니~~~

“야, 넌 왜 형이라고 안 하고 아저씨라고 불러?”

“저 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었잖아요. 우리삼춘 나이신데요.”

“하하! 그래?”

그러고 나서는 이 녀석과 친해졌다.

가끔 밖에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이고 엄마는 가출하여 동생 둘을 집에다 두고 저도 가출을 했단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을 위해서라도 그전부터 생각해오고 있던 야학을 앞당겨 열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그런 것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곳에서 일하며 야간 공고에 다니는 애들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 학생이었지 야간에 학교에 가는 날보다는 한 개라도 더 깎아 돈을 버는 재미에 물들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신나게 스피커속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돈을 버는데 몰두할 뿐이다.

“야, 너 학교안가?”

“형, 나 오늘 학교 안 가도 친구가 대신 출석해 준다고 했어.”

“넌, 학교 다니고 공부하려고 공장 다니는 거야? 아니면 돈 벌려고 다니는 거야?”

“용돈을 벌고, 학교는 졸업장만 있으면 되잖아!”

이런 녀석들이 더 많았으니 야학의 장소일 리가 없다

그래도 그 녀석 같은 녀석이 있으니 한번 해 볼만 하겠다 생각하였다.

위장취업자였으면서 야학을 하다니?

이것은 틀림없는 공산당인데.. 그것도 잊어버리고 굴에 뛰어들려고 하니..,

“나는 위장으로 취업한 것이 아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제대로 살고 싶어서이다.”

자기 최면에 빠져서 방을 써서 밤에 전봇대에 붙이고 다녔다.

그 다음 단계에는 노조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을 벌였다.

그곳은 노동집약적 작업이라 숙련공 하나하나가 사장을 먹고 살게 하는 밑천이기 때문에, 숙련공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사장들도 다른 업체에서 빼 갈까 봐 지키느라 혈안들이 되어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라도 하면 잡아와서 리치를 가하기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하여 정작 이곳에서의 에피소드는 제3부로 넘겨야 하려나 보다.

이러다가 단편소설을 쓰게 될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