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끝나는 날

길던 추석연휴가 끝났다.

후련하다.

복지관에도 가지를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글씨만 쓸려니 지루하고 답답했었다.

넓은 복지관의 서실에서 넓게 붓질을 하며 쓰는 글이 역시 호방하다.

그렇다고 내방 책상이 붓글씨를 쓸 수 없을 만큼 좁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작고 오종종한 마음은 아마 추석이라는 날에 짖 눌려서 그럴 것이다.

모두들 오랜만에 가족, 친구들을 만나 가을의 풍성함을 맘껏 즐기고, 이제는 각자의 왔던 곳으로 다시들 찾아 돌아간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그리고 그담 날은 나도 바빴다.

오랜만에 외국에 살던 친구가 들어와서 종일 어울렸고, 다른 친구들을 불러서 쌓인 이야기들을 하며 어린추억에도 빠졌었다.

그리고는 각자 또 자기들의 목적지를 행해서 돌아섰고...

추석은 가족들과 보내고 그리고 또 헤어져갔다.

그리고 또 남겨진 공휴일~~ 그 공휴일만큼 공허한 날 이다.

이제 할 일이 없고 만날 사람도 바닥이 났다.

아니 굳이 찾아 만나려면 왜 만날 사람 들이 없겠는가만... 쉽게 찾아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나의 사랑하는 애니를 데리고 먼 교회로 나가야 한다.

목적지를 꼭 정할 필요 없이 그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나 혼자, 아니면 꼭 둘만 있으면 더 좋다.

많으면 가을 야외에 시끄러움만 보태는 것일 것이다.

나가자!

시골의 길에는 아직 누렇지 못한 나락들이, 베지 않은 나락들이 뜨거운 햇볕을 갈망하여 완숙하기를 기다리고...

길가 변의 잡풀들은, 여름내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며 농부들을 애를 태우더니 이제 누렇게 꺾여져 가고 있다.

아직 길가 촌집의 열려있는 삽작 안에서는,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들이 더 붉어져가고...

신작로 길가에는 군데군데 엄마가 서 계신다.

이미 떠나버린 아들의 차 뒷 꽁무니의 배기통휘발유 냄새가 마치 아들의 체취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맡으려고 서 있지만, 매몰차게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댄다.

아들이 보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차를 보며 우두커니 엄마는 신작로 귀퉁이에서 눈가를 찍고 있다.

트렁크에 무슨 보퉁이를 그리도 자잘하게 넣었는지.

피난민 보퉁이 같은 그 속에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넣으려는 엄마와, 그만 넣으라고 손사래를 치는 며느리는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

마치 자기를 버리고 떠나기라도 할 것이 무서운 듯이, 한손으로는 자동차 트렁크의 문짝을 움켜쥐고 한번이라도 손주들을 더 보려고 차속을 들여다보며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그 속에서 깔깔거리며 아이가 웃는다.

아마 내년에도 오라고 아이에게 통사정을 하시나 보다.

그리고 며느리는 차에 올라 가 버린다. 그냥 앞으로만....

길가 이름 모를 작은 나무에 빨간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엄마는 그 잠자리만 맥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미 차는 보이지 않는데도, 그 자리에서 잠자리와 멀어져간 신작로 끝자락만을 번갈아 보고 계신다.

엄마 눈이 빨간 잠자리보다 더 붉다.

나도 우리 애니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며 그냥 앞으로만 떠난다.

앞길이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