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오월, 한하운을 보았다.

우리 집 담장에는 붉은 넝쿨장미가, 한껏 오월의 마지막 날임을 알리고 있다.

흰색 펜스에 붉은 넝쿨장미는 정말 멋스러움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당 안에서 보이는 울타리의 모습이다.

물론 담장 옆을 지나가는 길손들도 모두 감탄의 소리들을 하고, 더구나 어쩌다 지나가는 도회의 처녀들은 “어마, 어마”를 연발한다.

과장하여 연발한다.

딱~ 그만할 때이기 때문이다.

삽짝 밖을 나가는 나는 장미의 붉음에만 망막이 물들여졌던, 덩그런 눈동자의 시선이 논바닥을 뒤덮은 노랑에 환호가 나온다.

“보리다. 다 익은 논보리다.”

나는 그만한 나이가 넘어서 과장의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눈물이 나온다.

너무 노래서~~ 그래서 붉어보여서~~

쌀보다 보리가 더 수익이 좋다하여 우리 마을 논에는 더러 보리를 심었었다.

얼마 전까지는 푸르른 청보리였는데 이제는 익은 누런 보리이다.

그래서 군데군데가 완전한 노랑색이다.

멋지다.

나 어릴 적의 보리는 밭보리여서...

아직 많이 자라지 않은 보리밭에는 종달새가 둥지를 틀어~~,

아지랑이 오르는 봄에는, 아지랑이 따라 하늘 높이 오르는 종달새를 본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할머니는 종달새를 쫓는 나를, 보리밭에 못 들어가게 하셨다.

“보리밭에는 문딩이가 산단다. 문딩이는 애기를 잡아먹는단다.”

“왜?”

그래야 자기의 문딩병이 낫는단다.

그러니 종달새 잡는다고 보리밭에 들어가면 큰일 난단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 몰래 보리밭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보리가 익기 전에도 들어갔고, 보리가 누렇게 익은 후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거기엔 누구도 없었고....

나중에, 나는 그 속에 있었던 사람이 한하운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전의 보리밭은 나에게는 종달새였고, 그 다음은 문딩이였고, 그 다음은 한하운 이었고, 그다음은 꺼럭만 많은 슬픔이었다.

그 꺼럭의 보리가 이제는 논에서 끝없는 노랑을 보여주며, 내게 종달새와 문딩이와 한하운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 한하운 시인은, 그 사람 문딩이 한하운 시인은,

애기하나 먹고 붉은 울음을 울던 한하운은, 누렇게 익은 그 보리밭을 보면서 무엇을 슬퍼하며 그리워했을까?

바람에 스치어 바스락 거리는 보리소리 속에서 시인의 붉은 울음이 들린다.

그의 통곡이 들린다.

저 보리는 색깔이 핏빛일까?

붉은 장미 빛과 노란 보리 빛이 겹쳐 한하운의 붉은 노란색이 보이는 듯하다.

붉은 울음 속에, 붉은 황톳길을 걸어가는 절룩발이...

누런 문딩이 시인이 그 속에 보인다.

보리피리

한하운

​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출처] 보리피리 (한하운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