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고무신

내 운동화가 낡아서 옆구리가 터졌다.

엄마가 장에 가서 신발을 사자고 하셔서 엄마를 따라나섰다.

운동화라고 해 보았자 학생들이 신을 수 있는 검정 운동화뿐이고, 엄마는 내 발의 크기를 아시니까 그것에 맞는 문수의 검정 운동화를 사 오시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시장구경 재미에 따라 나선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인정해주는 운동화 외에는 교칙위반이 되어서 다른 신은 신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는 특별히 폼 나는 운동화를 내 발에 맞추어 신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운동화라 하여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편한 검정 통고무신이 좋았지만 그것을 신고 학교에 등교할 수는 없었다.

어려서 시골에 있을 적에는, 검정 통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개울에 가서 미꾸라지도 잡아 담고, 올챙이도 담아오고, 송사리, 각시붕어도 잡아서 넣어오던 편한 신발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집에서만 신을 수 있었을 뿐이고 학교에서는 당연히 신을 수도 없었고, 하물며 지금은 통고무신은 너무 귀한 신발이어서 이제는 옛날 물건 취급을 받아 흘러간 학창시절~~ 시골놀이에서나 그림으로 볼 수 있을 뿐이어서 이것마저 조금 더 있으면 골동품의 반열에 들지 않을 런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집 저집을 둘러보시며 한 가게에서 내 운동화를 고르시고는, 진열대에 있는 하얀 고무신을 만지작거리시며 한참을 망설이셨다.

그 하얀 고무신은 너무 고왔고, 더 좋았던 것은 고무신 콧등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그것은, 꽃이었던지 아니면 나비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뒤집어 보기도하고, 옆구리도 쳐다보고 하시더니.. 그 하얀 고무신을 골라 사셨다.

그리고 돌아오면서는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엄마는 집에서 일을 하실 때는 남자들이 대충 끌고 다니는 검정 통고무신을 신으셨고, 밖에 나가실 때는 누나가 신는 운동화를 더러 신으셨는데, 집에 뾰족구두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신고 나가셨던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신을 신고 다니셨는지, 벗고 다니셨는지 무엇을 주로 신으셨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엄마 신발의 콧등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하얀 고무신은 또렷이 기억을 한다.

엄마는 시장에서 사온 하얀 고무신을, 샘가에 가서 깨끗한 물을 받아 비누로 닦아서 햇볕에 속이 마르도록 비스듬히 세워두셨다.

그렇게 한참을 말려서 하얗고 뽀송한 신발을, 케비넷 한쪽에 잘 보관해 두시다가 어느 날 신발을 꺼내어 신고는 엄마는 아버지하고 외출을 하셨다.

나는 엄마하고 아버지가 옷을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함께 외출하시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에 의외였다.

하지만 예쁜 그림의 흰 고무신을 사신 뜻은 알았다.

그리고 돌아오신 며칠 후 집으로 사진 한 장이 배달되었다.

어느 산사의 대웅전 앞에서 두 분이 환하게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는 하얀 꽃신을 신으시고!

수줍어하시며 금산사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얀 예쁜 꽃고무신은 아버지께 자랑하고 싶으셨던 외출용 신발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셔서는 신발을 벗어 검정 세탁비누로 거품을 내어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닦고, 주워온 조약돌로 신발을 문질러 빛을 내었었던 것이다.

다음에 또 신으 실려고...

엄마는 이렇게 멋을 내고 외출을 한 적이 없으셨다.

항상 검정고무신을 끌고 몸뻬를 입고 만 계셨었다.

이렇게 귀하게 보관 하시던 하얀 고무신을 언제 또 꺼내 신으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그 예쁜 하얀 고무신은 늘 케비넷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서실에서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

얼마 전에 서실에 새로 오신, 사군자를 하시는 꽃꽂이 사범이신 여자 선생님 한분이 어느 행사에 찬조하시기 위해서 주문하신 검정고무신에 작은 나비와 작은 잠자리와 어린 꽃을 그려서 선물해 주신 검정고무신 이었다.

그 신발을 받은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그 신발 위에 엄마가 그려졌다.

그 검정고무신 위에는 콧등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검정 비누로 닦고 조약돌로 문질러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엄마의 새하얀 고무신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