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쓰는 글

오늘은 복지관 서실을 개방하지 않는 날이라 집에서 하루를 쉰다.

어제까지는 날이 흐리더니 오늘 오전 후반부터는 완연한 봄 날씨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글씨 쓰기가 마뜩치 않아 텃밭에 나가 보았다.

날씨 좋은 날만 골라서 내 놓았던 닭들도 오늘부터는 완전 개방해주니, 텃밭 곳곳에 푸릇푸릇한 어린 풀들을 신나게 뜯어 먹으며 그동안 쌓인 낙엽들을 헤집고 벌레 잡기에 여념이 없다.

뒤란의 복숭아밭에 가 보았다.

복숭아나무 옆에 있는 하얀 목련은 어느새 딱딱한 꽃봉오리의 껍질이 보드라운 솜털로 변해있었고, 복숭아꽃의 봉오리도 눈에 뜨일 정도로 도드라져 있었다.

이제는 목련, 복숭아꽃이 만개할 때가 별로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저번에 전지를 해주고 퇴비를 준 후, 비도 오고 서실에만 신경을 쓰느라 뒤란에 가 보지를 않았더니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이것이 봄이다.

봄은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많은 계절이다.

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봄에 쓰는 글은 단번에 써야하는 글들이다.

쓰다가 접어두고 다시 쓰기가 어려운 것이 봄에 쓰는 글이다.

봄은 바라보는 풍경이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남겨 두었다가 글을 쓰면 그 글의 맛과 멋이 없어진다.

차라리 바로 쓸 수가 없으면, 눈 속에 담아 두었다가 봄이 다 가면 추억으로 써야한다.

그 만큼 봄은 바람 한번 달리 불면 계절의 모양이 달라지고, 비가 한 번 더 오면 화단의 색깔이 달라지며, 아침마다 바라보는 하늘에 걸리는 구름의 높이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오늘 쓰는 글을 내일 쓸려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봄에 쓰는 글은 단번에 쓰지 않으면 그것을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모질게 춥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희망 속에, 새 꽃들이 자리다툼을 할 정도로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다.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툇마루에 나가 앉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계절이다.

이때는 글을 쓸 줄 몰라도 되고 시를 짓지 못해도 된다.

느끼는 바람과 나른한 햇빛과, 보이는 꽃만을 써도 예쁜 글과 시가 되는 것이다.

이 좋은 계절을 어떻게 내 글로 표현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괜히 어줍잖은 표현을 시심입네 하고 끄적거리면 오히려 계절에, 시에 미안할 따름이다.

봄바람의 부드러움은 글로 나타 낼 수가 없고, 봄꽃의 아름다움은 글로 칭찬 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봄은 오히려 글쓰기가 더 어려운 계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차라리 봄을 보내고 나서 지나간 봄을 회상하며 쓸 수 있는 글이, 그 봄을 제대로 대접하고 기억하며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감상이 아닌가도 생각한다.

집 잎 정원에 이제 산수유가 피었다.

엊그제까지도 봉오리만 겨우 보이더니, 그저께 밤 찬비 속에 함께 불어온 바람에서도 그들만의 비밀스런 남녘의 화신이 들어있었나 보다.

하룻밤 새에 노란색이 마당을 가득 채울 수 있다니...

바닥에는 물이 오른 보드라운 연두색 수선화 잎들과 튤립의 싹들이 정말 앙증맞은 모습으로 고개들을 내밀고 있다.

이 애들도 이제 며칠을 두고 서로 키 재기를 하듯이 쑥쑥 올라와 화단을 가득 덮는다.

이때면 아직은 꽃이 아니더라도 그 늘씬한 푸르름이 눈을 돌리기가 어렵게 나를 유혹할 것이다.

그러면 글을 쓰는 시간보다 오히려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고, 어두운 달빛에서 노랗게, 빨갛게 피는 꽃들을 아껴가며 보게 된다.

화단이 점점 더 파래진다.

달래, 냉이, 민들레, 고들빼기, 씀바귀, 질경이, 쑥들의 어린 싹들과 함께 나날이 푸르러지는 화단은 “이제 참, 많이 피었구나!”하고 생각할 쯤 이면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봄은 어느 시인의 말과 같이 고양이처럼, 요란한 기척도 없이 슬쩍 왔다가는 소리 없이 간다.

글 한 줄마저 그날 바로 쓰지를 못하면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바라보고 사색하는 동안에, 왔던 봄은 어느새 우리에게서 멀어져 갈 것이다.

이것이 봄이며 이때 쓰는 글이 봄 글이다.

봄 글은 질질 끌어서 노곤하게 쓰는 글이 아니다.

툇마루 양지쪽에 한나절 햇볕과 같은 글 이어야 한다.

소재가 많다고 그것이 전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은은한 따뜻함에 졸리는 고양이와 같이, 보드랍고 은근한 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봄 글은 고운 것이다.

계절만큼이나!

그렇게 단번에 예쁘게 써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