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그들은 갈 곳이 없다.

그 모질게 춥던 겨울이 지나 입춘이 되었다고 입춘첩을 써서 문설주에 붙인지도 제법 되었고, 우수도 지나 경칩이 가까워 오니 이제 개구리라도 볼 수 있을지 밭둑에 나가면 눈 여겨 본다.

하지만 아침은 아직도 한겨울이니, 개구리가 나오면 영락없이 놀라 기절할 것이다.

낮은 제법 이른 봄다워 따뜻한 햇살이 나기도 하지만, 우리 고장의 지역 특성상 낮에는 바람이 분다.

그래서 낮의 햇살이 따스하고 바람이 불면 이곳은 봄이 온다는 신호이다.

이른 아침에는 아직도 서리발이 허연 한겨울이니 일교차가 상당히 날 것 같다.

오늘도 습관처럼 일찍 일어났다.

특별히 정해진 시간이 없이 졸리면 아무 때나 자고, 눈 뜨면 한밤중이든 새벽녘이든 일어나 책도 보고, 글씨도 쓰고, 글도 쓰는 것이 일상인지라, 자고 일어나는 것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침에 움직이는 시간은 비교적 일정하여 누나의 출근시간과 나의 복지관에 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다른 날 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노인복지관 수강신청 접수 날이다.

노인복지관에서 강좌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자기의 프로그램을 수강 신청을 하는 날이다.

확실히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으뜸임을 증명되는 날이 또 오늘이기도 하다.

이날이면 좋은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하여,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기위하여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는 풍경처럼, 노인복지관에서도 정말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무료한 노인들을 위하여 노인복지관에서는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노인들의 여가를 돕는다.

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우리가 평소에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중에 노인들에게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복지관에 재능기부를 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한 학기씩 놀이삼은 수업을 한다.

학교처럼 죽자 사자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 익힌 재능으로 다시 지역 봉사활동도 하고 자기 개발도하여, 각종 노인 재롱잔치에도 참여하며, 대회에도 참석들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말 노인들의 애들 같은 치기들이 생겨서, 생각해 보면 쓸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경우들도 많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또 달리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기들끼리의 경쟁을 하기도 하고... 노인들의 노욕들도 많이 볼 수가 있다.

대회라는 것이 대부분 순위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노인들이라지만 그런 것에 길들여 산 세월들이 오래라서 그런지, 아직도 순위 매김에 민감하여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기도 하고 인격이란 것 중에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명예욕도 그 중의 하나인가보다 하고 생각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풍물을 배우면 시에서 노인 위안잔치 겸 시민 위로대회에도 상이라는 것이 걸려있고, 각종 경연 대회라는 명분으로 경쟁을 붙여서 순위를 정하여야 만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아니면 노인들의 삶의 가치를 높여주기 위한 동기유발의 깊은 차원에서 그런지 꼭 순위를 정해야만 대회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순위 때문에 여러 갈등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은 노인 복지관의 부수적인 일에 불과 한데 마치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들처럼 이런 것에 욕심을 내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노인복지관에서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리 대표들은, 회장님이라는 직함으로 자기 동아리로 사람들을 끌어서 자기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애쓰는 노인들의 명예욕도 볼 수 있어,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정치적 동물이구나 하고 느끼며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동아리 장은, 복지관의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 복지관 사무실에 마냥 들랑거리는 vip가 되는 것이며 복지관에서의 발언권이 그 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누가 인정하든 말든 자기 스스로가~~

오늘 아침처럼 바람이 불고 추운데도 6시 조금 넘었는데 100여명이 줄을 서 있다.

그중에는 나도 끼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자기가 수강을 원하는 프로그램에 속하기 위해서, 아침잠을 마다하고 찬바람을 맞으며 머리끝, 코끝까지 싸매고 줄을 서든지 바닥에 박스조각을 깔고 앉아 8시부터 하는 접수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일까?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길까?

꼭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라인댄스 선수가 되고자 하며,

풍물장이가 되어 우리 것을 보존 발전시키기 위한 배달민족의 긍지를 선양하기위한 일념 때문이며,

요가를 배워 도를 닦고 공중부양을 하기 위해서며,

서예를 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명필이 되기 위해서,

글쓰기를 배워 시인, 작가가 되어 우리나라의 지가를 좌지우지 하고자? ....

아니다. 갈 곳이 없어서ㅡ 이다.

어디든 가야하는데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부터 내가 갈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런데 찾아서 간 그곳에서 또 그런 명예욕과 과시욕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댄스 동아리에서 사람을 선발하는데 날씬한 사람들만을 뽑는다는 둥,

서예대회에서 선생이 개인적 친분으로 수상을 조작 한다는 둥,

풍물 반에서 누가 상장구를 담당하고, 상쇄를 맡고, 징잡이는 누가 해야 한다는 둥... 갈등이 또 생기는 것이다.

노인들이 날씬하면 얼마나 날씬해서 나는 뚱뚱하다고 경원을 당하고, 나는 다리가 벌어져서 동아리에서 찬밥이고,

가락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상쇄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며 징잡이를 하며, 장구도 삼채 하나도 제대로 못 치면서 상장구 한다는 둥,

한문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채본 만 겨우 따라 베끼면서 대상을 받는다는 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수강 못할까봐 새벽부터 이 북새통인 것이다.

해마다 일 년에 두 번씩 이런 일이 반복되니, 수강신청 방법을 바꿔서 시행하자고 하여도 두 군데의 노인복지관이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동일한 날자와 시간에, 동시에 수강신청을 하여 허수를 줄이라고 그렇게 건의를 하여도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접수 날자가 다르니 이쪽저쪽으로 다니며 두 군데, 세 군데 등록을 하여 발이 느린 사람들은 접수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동시에 접수를 하자고 하여도, 몇 푼씩 받는 프로그램 수강료의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데도 다른 핑계를 대어서 합의를 보지 못하며 허수를 만들고, 노인들이 새벽 바람에 나와 서 있게 만든다.

시에서 만들어 위탁경영 하고 있는 수탁 법인들의 경영 마인드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이것이 노인복지이다.

그래서 동시에 접수하여, 한 사람이 자기가 가고자하는 한 곳만을 택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시간을 나누어 활용 할 수 있게 하자고 하면, 어떤 이들은 내가 공부하기 위해서 이곳저곳 등록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한다.

엄청난 학구열이 지금 노인 복지관에서도 불이 붙은 것이다.

이곳을 학원이라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오히려 학문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리를 선점해 버린다.

그러면 발 빠르지 못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은 노인 복지관에 편입될 수도 없고 말뿐인 노인 복지일망정 그것조차도 구경을 못한다.

이것을 노인복지라고 우기며 학문의 자유이니 각자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운영자나 모자란 노인들의 노인복지 인식이다.

그럼 나머지, 그 수도 많은 엄청난 노인들은 역전 나무 밑으로 몰리고, 다리 밑에 박스를 깔고 앉아 막걸리라도 마실 수밖에 없다.

노인복지 아직도 멀었다 .

노인들 당사자들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자기들은 특권층이 아니다.

목소리 크고 잘난 척 하는 것이 어른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 줄 아는 노인이 어른이다.

그래야 세상을 잡을 수 있다.

나 같은 쫌팽이 어른은 복지관에 나와서 공부 한답시고 앉아있고, 진짜 어르신들은 박스위에 앉아 계신다.

제발 똑똑하게 나이들을 먹자.

갈 곳이 없다. 노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