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시장 단상

연일 매서운 한파가 몰이치고 있다.

하루건너 한번 씩은 온수가 얼어서 따뜻한 물을 쓸 수가 없는데,

다행히 눈은 안 와서 길이 미끄럽지가 않아, 누나와 대야 장에 동태 무국을 끓여 먹으려고 동태를 사러 나갔다.

장사하시는 분들이 나오셨을까? 하면서도 헛일삼아 한번 나가보잖다.

1일, 6일 오일장이 서는 날 이다.

장을 좋아하는 나는, 다치기 전에는 자주 오일장을 구경삼아 다녔다.

삶의 애환들이 그 속에 있고, 여러 가지의 특산물도 구경할 수가 있고, 흥이 있는 현장들인지라 여행을 가도 시장근처에 잠자리를 잡는 버릇이 있을 정도여서 시장 통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기를 좋아했다.

수술 후에 걷기가 힘들어진 후에는, 누나를 태우고 운전하여 군산 대야 장에라도 가면,

어느 날에는 사람보다 많은 차에 치어 걸어 다니지를 못하고 차속에 앉아 있다가 오기만 하는데, 오늘은 차들이 많지 않아 주차도 쉽고, 그래서 사람들도 많지 않아 나도 내려 장을 둘러보았다.

밖은 엄청나게 추웠다.

시장에는 사는 사람들보다, 파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더 많았다.

사는 사람들은 없으면 다른 것으로 대치하여 먹고 추위를 나면 되지만, 파는 장사꾼들은 장날인 오늘 팔아야만 내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추위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면서도, 그 추위를 무릅쓰고 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좌판을 앞에 펼쳐놓고 앉아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안 노인네와 나이든 아주머니 들인 것 같고 혹시 그중에는 예쁜 젊은 아줌마도 끼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려우니.....

앞에 놓인 물건들만 없었더라면, 시장이 아니라 무슨 영화촬영 혹성탈출 세트장인 외계에 온 것처럼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모두 두르고 싸고 앉아서 보이는 곳이라고는 눈들뿐이었다.

눈만 빠꼼히 내어놓고 동태를 파는 할머니와 물건들을 둘러보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사는 건너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였다.

“아니 어떻게 시골에 사시는 분이 생선을 파시느냐?”고 물었더니..

‘먹고 살려면 여름 겨울이 어디 있냐.’고.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 없으니, 그래도 장사라도 해 봐서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몸이라도 성하니 이거라도 해먹지, 몸뚱이 병이라도 들었으면 이거라도 했겠느냐.’ 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푸성귀도 안 나는 겨울이지만, 손 놓고 앉아 경로당에 가서 남들 흉이나 보느니, 한 푼이라도 벌어 쓸려고.’ 나왔단다.

그러면 생선은 어떻게 구입하느냐니깐 시내에서 생선장수를 하는 큰 아들이 장날 전에 사다 준다는 것이다.

그것을 집에 두었다가 동네 아저씨 트럭에 실고, 머리에 이고 나왔다는 것이다.

잠깐 서서 이야기하는 동안인데도 손끝이 시려왔다.

좌판 옆에 피워놓은 연탄 화덕에 연신 손을 쬐는 할머니는, 나더러 이쪽으로 건너와서 불을 쬐라하시며 미안해하신다.

좌판에는 명태 외에도 수입산 홍어도 있고 고등어도 몇 마리, 꽁치...

싸게 줄 테니까 설날대목 준비를 해 가라고 하신다.

그런데 아직은 설날이 멀어서, 나중에 또 온다며 그냥 동태하고 꽁치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돌아 나오면서도 자꾸 뒤가 돌아다 보였다.

내친 김에 추워도 장 끝까지 한번 돌아보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오늘 같은 장날에, 명함을 돌리는 이 들이 한명도 보이지를 않았다.

저번 장에 왔을 때, 누나는 명함 한 장을 얻어가지고 왔다. 군산시장 후보란다.

그런데 오늘은 한 장도 얻을 수가 없었다. 왜? 날이 추워서이다.

추워서 귀하신 이들은 꼼짝을 안하시는 것이다.

이들의 오늘의 삶의 현장은 따뜻한 어느 음식점 아랫목인지도 모른다.

아마 다음 장에는 명함을 열장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설날도 가까워지고 대야 오일장도 제법 활성화되어, 시내에서도 장날이면 많이들 와서 주차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이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이런 표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씨가 추우면 서민들은 먹고살지 않나?

서민들의 생활이 어떻고, 재래시장의 경기가 어떻고 입 만 열면 떠들어 대는 이들이, 오늘처럼 추운 장날에는 장사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으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몇 사람에게 이렇게 추운 날 인사한다고 명함 돌려서, 시장되고 의원되는 것도 아니니까,

다음 장에 사람들 몽땅 모였을 때가 경제적인 선거운동이라고 영악한 머리로 계산이 되었을까?

오늘같이 추운 날 몇몇 할머니 아주머니 표 보고 시장에 나올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이들의 머릿속 에는 서민들의 삶이 어떤가는 그림속의 상상 속에 다 그려지고, 현장은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특하고 전능이신 이들은 안 봐도 훤히 알고 있으니까.

바로 이들이 그들이다.

오늘 인사 안 해도 사람 많은 다음 장에 와서 명함이야 돌리면 되지만, 좌판 앞에 번개탄 위에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곱은 손을 쬐고 있는 할머니들은, 오늘 장에 나오지를 않으면 다음 장에 물건을 떼어올 밑천을 만들 수 없으니 ...

몇 마리라도 팔면 다음 장에도 나오겠지.

그들의 명함과 바꿔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니들이 이들을 보았는가? 오늘!

이 추운 날에 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