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력 2.

그러나 그중에서 제일 멋진 것은 우리 누렁이였습니다.

누렁이가 둘인데 하나는 잿간 옆 외양간에 사는 누렁이고, 하나는 토방 옆 아궁이 앞에서만 자는 누렁이였습니다.

할머니는 둘 다 모두 누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두 누렁이는 서로가 아주 달랐습니다.

외양간에 사는 누렁이는 용근이 성이 집에 와서 “창열아” 하면 내가 대답하기 전에 지가 먼저 음~~매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한 누렁이는 방에서 나오는 나만을 토방 밑에서 기다리며 바라다봅니다.

용근이 성이 잿간에 가서 지게를 지고, 누렁이 고삐를 쥐고 나와서 나를 지게에 태우면 그 때에야 다른 누렁이는 지게를 따라 나옵니다.

그러다 할머니가 “누렁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대밭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부르지 않을 때는, 마치 지 엄마 따라 오듯이 큰 누렁이 뒤를 따라 나와 메깥에서 풀을 뜯는 큰 누렁이 옆에서 나와함께 놉니다.

할머니는 그 누렁이가 진돗개라고 했습니다.

진돗개 누렁이는 얼마나 영리한지 옆집 닭과 우리 닭을 구별할 줄 압니다.

용근이 성이 다른 일이 있어서 산을 못 갈 때는, 누렁이는 나하고 하루 종일 놉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정갈하신지 누렁이를 토방위에도 오르지 못하게 나무라십니다.

토방 옆에는 윗방에 불을 넣는 부뚜막이 있습니다.

방에 불을 넣을 때에는 그곳에서 나무를 지핍니다.

그곳 까지만 누렁이의 영역입니다.

만약 토방에라도 올라오면 그날은 누렁이가 대밭으로 유배되는 날입니다.

누렁이는 할머니에게 혼나면 무조건 대밭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산에서 돌아오는 기척이라도 있으면, 기가 막히게 알고 대밭에서 나와 펄쩍 펄쩍 뛰면서 난리가 납니다.

그러면서도 아침에 따라 나오지도 못합니다. 할머니가 무서운 가 봅니다.

하루는 내가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누렁이가 마당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는데, 병아리를 깐 암탉이 새끼들과 놀러 마당에 나왔습니다.

그 어미닭이 병아리하고 지 밥을 먹어도 못 본 척하고 누워서 잠만 잡니다.

어미닭이 지 배를 밟고 병아리들하고 지나가도 모른 척 합니다.

그런데 옆집 장닭이 울타리너머로 우리 암탉을 보고 담장을 넘어 왔습니다.

이것을 보고는 누렁이가 달려들어서 그 장닭을 물어 버렸습니다.

또 사정도 모르는 할머니한테 혼났습니다.

그러니 대밭으로 들어가 저녁때까지 나오지를 않습니다.

누렁이는 아무 잘못도 안했습니다.

불쌍해서 내가 불러도 안 나오더니, 뒤 안 장독대까지 가서 부르니 모른척하고 나와서 놀았답니다.

이런 친구였습니다.

할머니 집 대밭은 아주 넓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도 굵은 왕대였습니다.

그래서 이리 시내에서, 대나무일을 하시는 사람들이 자주 대나무를 사러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구니 소쿠리 등을 만드시는 분들인가 봅니다.

이 분들이 오면 누렁이는 짓지도 않고 그냥 멍한 눈으로 바라만 봅니다.

지 쉼터가 베어 지는 줄 아는 가 봅니다.

대를 자를 때는 반듯이 자르지를 않고, 사선으로 자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늘 저한테 대밭에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죽창이 된 대에 발을 찔릴까 그러시는 겁니다.

그런데도 누렁이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 다닙니다.

할머니 몰래 누렁이를 따라서 나도 대밭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밭에는 저녁이 되면 새들이 많이 잠자리를 틉니다.

대밭에 들어가 보면, 큰새들이 밤사이에 작은 새들을 잡아먹은 흔적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먹다가 버린 새들의 머리도 많이 보입니다. 배암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대밭에 들어가는 것을 기겁을 하십니다.

그런데 대밭은 참 재미있습니다.

누렁이는 그 맛을 아는 가 봅니다.

할머니한테 혼나기만 하면 하루 종일 그 속에서 나오지를 않으니까요.

저녁에 포수들이 대숲에 있는 큰새들을 잡으려고 자주 옵니다.

그러면 누렁이는 짓지도 않고 노려보기만 합니다.

포수가 새들을 겨냥을 하면 그때에야 왕하고 짓습니다.

그러면 새들이 다 달아나 버립니다.

포수는 허탕을 치고 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누렁이였습니다.

큰 누렁이는 용근이 성을 더 좋아해서 성만 오면 음메 하고, 내가가면 혓바닥으로 내 얼굴만 핥지만, 우리 누렁이는 하루 종일 대밭에 있다가도 나만 오면 신이 납니다.

할머니한테 혼나지 않으면 아침에 두 누렁이가 함께 산에 갑니다.

메깥에 간 누렁이는 성이 큰 누렁이 먹이려고 꼴을 베는 동안에도 자기가 내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시야에서 멀리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메깥에는 메뚜기들도 많아서...

왕치, 풀무치, 때때기, 송장 메뚜기, 여치, 베짱이, 땅치, 기름쟁이, 사마귀벌레, 소똥구리 등 곤충들과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부전나비, 검은 나비 등 날 것들도 많고,

참나무 찢어진 곳에는 참나무 진을 먹으려고 풍뎅이, 집게벌레, 장수하늘소, 사슴벌레들도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둠벙에는 물방게, 물메암이, 소금쟁이, 물장군, 물귀신, 물자라.. 그리고 이름 모를 곤충들도 많아서 놀 것들도 많은데...

누렁이는 멀리 가지도 않고 꼭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만 메뚜기를 잡는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든지...

그것도 재미없으면, 내 옆에서 날아다니는 잠자리만 구경하면서 누워 있습니다.

장구잠자리, 말잠자리, 실잠자리, 보리 잠자리,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나도 너무 재미있어 구경하고 있으면 저도 함께 누워서 구경합니다.

지금 같은 가을에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메같에도, 마당에도 한 가득이었고,

멍석 깔아 널어놓은 붉은 고추에는, 고추보다도 더 붉은 고추잠자리가 가득했었습니다.

이때쯤 벼가 익어가고 나락 즙이 나올 때면, 논둑을 지나가면 벼메뚜기들이 뛰어서 걸어가지를 못할 정도였고. 나락 모가지를 뽑아 주렁주렁 벼메뚜기를 꿰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