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할아버지, 저게 뭐에요?”

“뭐가?”

“저기, 저쪽 땅에서 뭔가 실처럼 하얀 것이 고불꼬불 올라오잖아요!”

“글쎄.”

“할아버지는 눈이 안 좋아서 안 보이시는가 봐요?”

“글쎄다.”

하고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이가 가리키는 쪽 땅을 보았다.

아지랑이였다.

한 이틀 날씨가 궂고 땅이 젖더니, 오늘은 날씨가 너무 화창하여 땅에서 벌써 약한 아지랑이가 피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 보여요?”

“그래.”

“뭐에요?”

“그것이 아지랑이란다.” “아지랑이! 학교에서 배웠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글속에서 읽었는데 사전 찾아보고 알기는 했어요.”

“저는 땅이 녹아서 김이 올라오는 것.. 바로 증발하는 것이라고 해서, 물 끓일 때처럼 나는 하얀 김 인줄 알았어요. 읽기는 했지만 보기는 처음이에요.”

“그랬겠구나.”

“그럼 왜 아지랑이가 생겨요.”

“응, 그것은 풀들이 올라오면서 숨을 쉬잖아? 그래서 생기는 입김이란다.” ㅎㅎㅎㅎ

“할아버지 글 쓰시는 식으로 말고 정말 과학으로 이야기 해 주셔요!”

“그래, 니 말이 맞아! 그 동안 겨울 추위에 얼고 습기가 가득한 땅들이 화사한 봄이 되면 햇볕에 증발하면서 저렇게 보이는 것이 맞아.”

오늘은 서울에 사는 손녀딸이 며느리하고 함께 서수에 왔다.

애들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직장에 출근한 조카는 밤에 오기로 하고 얘들이 먼저 왔다.

항상 방학 때나 오던 애가, 이번에는 기가 막힌 봄에 타이밍을 맞추어왔고 마침 날이 좋아 아지랑이도 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지 할머니와 엄마는 제수를 마련하고, 나는 이 애를 데리고 우리 집보다 더 시골인 근교로 나온 것이다.

얼마나 절묘한 시간 맞춤인가?

이 애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키가 작은 나보다도 키가 더 크다.

그런데 이제야 아지랑이를 처음보고 감탄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감탄이라도 한다.

학교에 뭐라고 하고 결석하고 왔느냐니까, 요즘 학교에서는 체험학습이나 효도학습이란 명목으로 부모님 허락 하에 결석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부모들과 함께 외국에 나갔다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어디 다녀왔느냐니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비밀로 한다면 알려드릴게요.”

“그래, 비밀로 할게.”

“사실은 2학년 때 태국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베트남에 다녀왔어요.”

“혼자?”

“아니요~~ 아빠, 엄마, 이모들 하고요.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말씀 하시지 말고 혼자만 알고 계셔요.”

“왜, 할머니가 아시면 어때서?”

“할머니가 아시면 섭섭해 하시잖아요.”

“그럴까? 할아버지는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할아버지 생각이고요.”

“그래, 알았다.”

이 애가 언제커서 지 할머니가 서운해 하고, 지들 부모가 할머니한테 미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애가 지금껏 아지랑이를 한 번도 보지를 못했고 책에서만 읽었으니, 그래도 오늘 시골 사는 영감 덕에 직접 눈으로 볼 수가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기회였던가.

요즘 젊은 부모들은 많은 시간과 물질의 여유 속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견문을 넓혀준다고 명절 연휴에도 여러 가지 핑계로 시골 엄마는 기다리는데 자식들은 지 자식들을 데리고 하늘에서 엄마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절을 한다.

이것을 뭐라고 하여야 할까?

교육이란 이것이 맞는가?

아니라면 나는 늙은 구닥다리 영감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지들이 잘한다고 하면 나는 진보적인 깨인 할아버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구닥다리 영감이 되고 싶다.

진보와 보수는 그것이 아닌데...

손녀딸애는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쓴다고 그적이며 올 때는 내게 자기가 쓴 글을 조금씩 가져오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작가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한다고 내 명함을 몇 장씩 얻어가는 애이지만...

이 애가 오늘, 시골에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와서 더 시골에 나가서 본 아지랑이를 어떻게 쓸는지, 다음에 올 때 가져와 보라고 해야 하려나 보다.

그래도 이런 시골에 할아버지라도 사니까,

돈 주고 고구마 캐기 현장학습 안하고, 돈 주고 닭 구경 토끼구경도 안하고, 돈 주고 아지랑이구경 안했으니....

할아버지 덕이라고 쓸지, 아니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기가 막히게 때를 잘 맞추어서 돌아가 주셔서 고맙다고 할는지?

돌아오는 차속에서 아이의 잠든 모습이 천진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무슨 꿈을 꾸며 잘까?

태국?, 베트남? 아니면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