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론

나는 쉬운 시가 좋고, 애들 같은 맑은 시가 좋고, 아가씨 같은 화사한 시가 좋고, 봄처럼 따뜻한 시가 좋고, 양지바른 무덤가의 할미꽃 같은 시가 좋다.

그래서 예이츠가 좋고, 김 억이 좋고, 소월이 좋고, “진달래꽃”이 좋다.

장미보다는 수국이 좋고, 비키니 같은 양장을 요란스럽게 한 엄마보다는 애기 젖먹이다 젖이 보이는 무명적삼을 입은 엄마가 더 좋다.

나는 모든 애기는 다 좋아하지만, 비싼 보행기에 양산을 받치고 가짜 젖꼭지를 빠는 이기보다는, 풀밭에 발발거리고 기어 다니다가 엄마 젖을 물고 당기는 아이놈이 더 이쁘다.

신나게 달리는 벤츠, 무스탕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보다는, 때때기, 왕치 기름쟁이하고 노는 애가 더 귀엽다.

그래서 나는 가락이 있고, 그림이 있는 가락시인 정형시가 좋고, 그래서 정형시의 어미인 시조가 더 좋다.

왜 시가 어려워야만 하고, 그래야만 현대인의 감추어진 내적정서의 갈등과 실상과 감상의 지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 머릿속, 가슴속에는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생각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난장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각설이의 타령으로도 나오고, 베토벤으로도 나오고, 스티비 원더로도 나오고, 김광석으로도 나온다.

그래서 머리에서 나오는 시가, 가지각색으로 똑똑하고 차원 높은 시인에게서 나오는 시는 어릿하고 어수룩한 이들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클래식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 가곡으로 나오는 정지용의 “향수”를 듣고는 고향을 그리며, 함부로 쏜 화살이 어느 풀숲에 꽂혔는지 함께 찾아 나설 수가 있다.

누런 황소가 누어있는 곳이 들판인지 토방인지도 그리며, 사철 맨발인 아내도 그릴 수가 있다.

하늘에 비행기가 미국으로 가는지, 제주도로 가는지, 런던으로 가는지, 하늘을 쳐다봐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할머니 무릎 베고 왕골 멍석위에 누워서, 허연 꼬랑지그림을 그리며 날고 있는 비행기의 여름하늘의 자취가, 가다가 안보이면 미국에 갔는가 보다하고 마음속의 그림을 그려보면 된다.

왜 시가 어려워야 하나?

읽어도읽어도.. 무슨 말 인지 알 수 없으면, 내가 그만큼 비정서적이라 그러나?

아니면 내가 지적 수준이 떨어져서 그러나?

시란 읽어서 알 수 있어야 하고,

시란 아이큐가 40만 되어도 읽고, 울고 웃으며 땅을 치면 되는 것이다.

시는 이야기를 그리면 되는 것이지, 이야기를 만들어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 속에 정치를, 경제를, 사상을, 이념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읽고 사고와 사상은 자기가 만들면 된다.

그래서 유치한 나는,

유치한 가락이 있는 뽕짝 같은 정형시를 좋아하며, 육자배기 같은 막걸리가 있는 시가 좋다. 프랑스산 포도주보다, 칠레산 포도주 보다, 러시아산 보드카보다 그냥 막걸리 같은 시가 좋다. 누룩냄새가 더 많아도 좋다.

왜 억지로 포도주의 맛도 모르면서, 자기도 모르는 포도주를 남에게 맛보라고 권하나?

그러면서 저도 모르는 맛을, 맛있다고 찡그리며 마시나?

나는 찡그리며 마시는 술은 싫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마시면 된다.

그것을 안 마신다고, 술맛도 모르는 애주가라고 비아냥해서는 안 된다.

술맛은 우리들의 미각세포가 알고 있다.

술맛 아는 척해서는 술꾼이 아니다.

가슴속에서 그릴 수 있는, 어려워도 짧게 그릴 수 있는 시를 쓰자.

억지로 어려운 말 쓸 것 없다.

수필과 시는 다르다.

분명히...

나는 시장이 아닌 마트나 백화점에서 사는, 알지도 못하며 비싸다고 자랑하는 시보다는 땅 파서, 씨 뿌려, 벌레가 먹은 시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