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요즘은 시골에서 모내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아니, 모내기는 하는데 이앙기가 한다.

논에 모내기하는 사람은 이앙기운전수 한명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기계화이고 자동화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일일이 지게질하여 모를 져내는 목가적 모내기 풍경을 볼 수는 없다.

시골에 노인들밖에 없으니, 경노에 발 빠른 농기계회사에서는 사람을 기계로 대치하여 떼돈을 벌고 있다.

역시 이제는 원시인들보다는, 영리한 근대인들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억지로 그 시대로 돌아가서 사람의 힘으로 일을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힘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기계를 빌어 더 많은 효율성을 올려야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면서 여유가 생기는 시간에 농촌 사람들도 삶을 즐겨야하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원시시대가 그리운 원시인이라, 기계가 들어가 논을 갈아가며 모를 심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갈수록 인간의 비인간화를 보는 것 같아 슬퍼진다.

우리 앞집 형님이 들으면

“미친놈 낭만이 밥 먹여 주냐?

허리 아파 죽겠는데, 무슨 놈의 모내기여?

나는 기계모를 심으니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농촌에 계속 살란다.“

“제초제 미리 하니 풀도 안 나서 피사리 안 해도 좋고,

농약만 주면 멸구도 없고 메뚜기가 뜯어먹지 않아서 좋고,

농약만 때 마주어서 서너 번만...

그것도 다 기계로 하면, 가을에 콤바인으로 베어 탈곡기가 탈곡하여 농협건조장에 물벼로 수매하면 돈 나오는데 무슨 놈의 모내기여?“ 하며

나보고 “미친놈, 그러니 배고프지! 우리는 삼겹살 지겨워서, 이제는 안 먹고 꽃 등심을 먹든지 항정살 먹지.. 뭔 맛으로 목살 먹고 삼겹살, 그것도 그 기름에 밥까지 볶아먹는 무식한 짓을 했는지 몰라!”

하시며 유무식의 판단기준을 무슨 고기를 먹느냐에 두면서, 자기의 현대화된 농사기법과 가을 추수에 대해서 신이 난다.

“그런디 올해는 정부가 수매가를 더 주어야 할 건디 어쩔랑가 모르겠다.”고 정부 욕을 신나게 해댄다.

“농사짓는 놈은 그저 먹고사나? 농약 값 오르고 비료 값 오르면서 다 올라도 쌀값은 항상 그 모양이니...

하기야 지들이 밥 안 먹으니까 쌀이 비싸든 말든 상관없지만, 우리 같은 일꾼들은 밥 먹어야 밥심으로 일하지~~ 이러다가는 농사져서 전부 우리가 먹어 없애야 될 판 여~~“

이것이 모내기가 없어진 농촌의 헌재 모습이다.

 

모를 심을 때는 이제 새로운 모습이 생겼다

예전에는 논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모내기소리가 가득했었지만 요즘은 불을 켜고 이앙기가 밤에도 논을 가니... 밤낮으로 사람대신 논바닥에는 벌레 잡아먹으러 따라다니는 왜가리만 가득하다.

이 애들도 전부 수면이 모자라서 수면제라도 먹어야 잠을 잘 수가 있지, 밤낮으로 시끄럽고 따라서 먹을 것이 지천인 줄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철인데 그냥 잠만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밤에도 논바닥이 허옇다.

그것은 흰 소복 입은 도깨비 귀신이 아니고, 밤에 불 빛 따라 벌레 잡아먹는 왜가리들이다.

이제 왜가리들만 보아도 그 논이 친환경인지, 아니면 농약을 많이 주어서 땅에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지 판단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논을 갈아엎을 때는 왜가리가 별로 없는데, 어떤 논에는 왜가리들이 떼거리로 콤바인을 따라 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왜 그럴까?

그 논에는 먹을 것이 많다는 뜻이다.

즉 어쩌다가 미꾸라지도 있고, 국산 우렁이도 있고, 버들치 새끼라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왜가리가 많은 논은 아직도 오염이 덜 되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사람이 모르는 것을 미물들은 더 잘 안다.

이것이 자연이며 또 지금의 농촌인 것이다.

옛날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라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왜가리는 벌레 잡는 재미에 기척도 안한다.

예전에는 품앗이로 모를 내었는데, 요즘은 왜가리들만 이 논 저 논다니며 품앗이로 논 벌레들을 잡는다.

 

나는 요즘 서로가 협동하며 이해하고 어우러져 사는 것을 잃은 이유가, 시골의 품앗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오래 묵은 농투산이인 우리 앞집형님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듯이 미친놈이 확실할 것이다.

그래도 옛날 미친놈으로 돌아가 보자.

논의 한 모퉁이에다 써레질을 하여 논을 거른 후, 겨우내 보관해 두었던 볍씨 종자를 뿌리고 보온할 수 있는 뭐라도 덮어둔다.

그러면 볍씨가 발아해서 모가 나온다.

적당히 자라면 온 논을 쟁기로 갈아엎어서 논에 물을 적당히 대어 놓는다.

그리고는 모내기를 시작한다.

모가 일찍 자란 집부터, 온 동네가 순서를 장하여 모내기를 한다.

이 때에, 우리가 두레라 하는 품앗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집집마다 서로 협동하여 논에 벼를 심는다.

줄을 맞추어 반듯하게 심기위하여, 논의 양쪽에서는 못줄이라 하는 줄을 팽팽히 잡아당겨서 줄을 맞추어 준다.

그러면 지게에, 자란 모를 지고 온 모쟁이들이 논의 이곳저곳에 모 덩어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둔다.

일을 편하게, 잘 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자리를 잡아서 던져두는 것이다.

그러면 잡아당겨 팽팽히 늘어진 못줄을 기준으로, 사람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옆으로 늘어선다.

한 손에는 모쟁이들이 던져둔 모 꾸러미들을 들고..

그러면 농가가 시작된다.

하나에 심고 ...

서 너개 심고 허리를 편다.

또 하나가 시작되고 서너 개가 진행되면 허리를 편다.

이렇게 하면서 온 논을 전진한다.

그 가락을 멋지게, 구성지게 노래하는 이가 이 동네에서는 최고 멋쟁이다.

어느 쯤 나가면, 함지박에 밥이야, 국이야, 술이야, 머리에 또아리 틀고 이고 오는 아낙들이 보인다.

그렇게 맛있는 샛꺼리이다.

논두렁에 나와 웃으며 먹고 마시고 또 들어간다.

그렇게 연속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점심이 나온다.

한 그릇씩 먹고 마시고 논두렁에 누워 농가들을 부른다.

또 논에 들어간다. 반복된다.

이때 어른들은 힘이 들지만 이날을 기다리는 애들은 신이난다.

동네에서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 수육이라도 한 첨 씩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애들은 모두 집에서 숟가락만 들고 오면 되는 것이다.

논 주인들은 이날은 당연히 논일을 하는 가족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밥을 먹고 일을 하는 날인줄 안다.

그래서 음식은 넉넉하게 한다. 이날 잘못하면 동네에서 인심이 난다.

그 다음날은, 또 그 다음날은....

이렇게 순서를 정하여 마을 행사가 된다.

서로 도와서 하는 품앗이인 것이다.

그러나 기계화가 되면서 허리들은 꼿꼿해서 좋지만, 꼿꼿한 허리로 논 주인은 앉아서 콤바인 기사하고 커피를 마신다.

몇 번 털고 나면 그 집은 끝이다.

자고 일어나 보면 그 집은 언제 모내기가 끝이 난지도 모르게, 모내기가 끝나서 주인 코빼기도 보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지금의 농촌이다.

그래도 이것은 나은 것이다.

아예 돈을 주고 일 년 농사를 대행시킨다.

모내기부터 농약 주는 방제하고, 물대주고, 추수, 탈곡까지... 우리 동네는 일괄도급에 100만원이란다. ㅎㅎㅎㅎ

농부도 힘들다.

우리에게 협동이라는 것은 이제 없다.

내 것 없으면 굶어 죽는 세상이 되었다.

왜가리만도 못하다.

하기야 애들이 감자 좁숫가락 허리에 차고 나올 아이들도 없는 농촌이다.

그래도 어떤 논에 왜가리가 불빛을 보고 논을 뒤지는 곳이 더 많으면 좋겠다.

이것이 지금 농촌 풍경이고 세상풍경이다.

세상인심은 시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것을 만든 것은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