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공보다 더 멀리 날던 시절 1.

점심시간이면 이곳저곳 조그만 공터에는 얼굴이 파란, 애들 귀신들이 공놀이를 한다.

어울려 공을 찰 만한 운동장도 없으니, 도랑 옆이든 문 앞이든 상관없이 공터만 있으면 운동을 한답시고 공들을 찬다.

그러다 힘껏 내지르면 헛발질에 공 대신 운동화가 벗어져 날아간다.

마당은 온통 웃음바다다.

그래도 신이난다.

빛도 없이 형광등만 켜진 컴컴한 작업장의 연마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스피커에서 귀를 찢듯이 울려나오는 뽕짝가락 속에서 벗어나 흰 바람이라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차보고 들어가겠다고 악착들이다.

얼굴과 손은, 모두가 시퍼렇게 광택 연마제가 범벅이 되어 시푸르둥둥하여 육탈하다만 송장의 꼴이다.

마치 대낮 공동묘지에서 하는 귀신들의 축구시합 같다.

내가 다니던 공단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조그마한 작업장에 연마기그라인더 돌아가는 소음과 그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졸음이 온다고, 졸음과 무료함을 달래준다며 작업장 네 귀퉁이에 스피커를 달아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틀어대는 뽕짝노래소리!

그 속에서 유일하게 해방되는 맑은 바람이라도 쐴 수 있는 유일한 점심시간이니 신발이 날아가는 것이 대수이겠는가?

내가 다니던 이리 귀금속공단의 당시의 모습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갈 데가 없어, 지금은 서해대학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재래시장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우리 동네 실업전문대학 앞에 조그마한 가게를 빌어 길거리 빵장수를 시작하였다.

말이 자취를 하였지 동생이 살림을 하며 함께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나는 거저 얻어먹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라면이나 끓이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먹을 것을 만들어 돈을 받고 장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눌려 그 당시에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있었던 오방빵장사를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빵 기계를 구입하는 곳도 모를 뿐 아니라 요즘 말하는 레시피도 모르니..

아이템만 결정했을 뿐 디테일은 전혀 없었다.

정말 무모한 도전임에 틀림이 없는...하지만 “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취직은 불가능했고 그 동안 하던 공부도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승부가 날수도 없을 뿐 아니라,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투자가 필요한데 모든 것이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불편함과 다급함에 마음이 간 자립의 방법이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 돈으로 환원시키는 방법밖에는 달리 없었다.

그래서 빵장사는 적은 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형님께 보조를 받아 일단 동네구멍가게를 빌어놓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데 가게만 확보되었을 뿐이고 기계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우체국 앞에서 인기를 끌면서 길거리장사의 인기를 누리던 빵장수에게 구입처를 물어 보았다.

알려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며칠을 두고 그곳에서 빵을 사면서 기계의 네임플레이트를 살펴보려고 하여도 가려 놓아서 볼 수가 없었다.

결국은 서울에 계시는 형님 친구 분께 의뢰해서 온 청계천을 뒤져 찾아내었다.

그렇게 빵장수를 시작 하였다.

계속되는 빵장수의 쾌담은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므로 뒷이야기로 패스하고!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이루었던 나의 첫 기업체를 접고 ~~~~

이리 귀금속공단 공돌이가 되었던 것이다.

위장취업자는 모두가 공산당 빨갱이로 취급되던 때여서 처음 들어갈 때는 약간 긴장도 했었지만, 재미를 가지고 다니다 보니 내가 위장했다는 사실을 나도 까맣게 잊고 다녔었는데!

지나다보니 본색이 슬슬 들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제 1차 유류 파동 때였던 것 같다.

자취집에서 점심을 먹고 공장에 들어오니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쑥덕거리는 것이 무슨 사단이 생긴 것 같았다.

한 녀석을 잡고 뭔 일이냐고 물었더니..

“형, 우리 작업공임을 반절로 깎는데!”

“왜?”

“기름 값이 올라서 원석 값이 올랐데.”

“아니, 그렇다고 무조건 반절이나 깎는다고 해. 누가 그래?”

“양부장이!”

양 부장은 사장의 동생이니 틀림이 없는 정보일 것이다.

그렇게들 쑥덕거리고 있는데 작업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고, 그렇다고 사장한테 진위를 파악할 엄두도 못 내고 우왕좌왕하는데...

깍두기 머리 두 놈이 등장하였다.

“이 샤끼들 왜 일 할 시간에 지랄들 하고 있어? 빨리 안 켜.”

“듸질려고 환장들 혔어?”

그러자 여기저기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도 돌아갔다

이것이 그 당시 공돌이동네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나도 기계를 켜기는 했지만 그 소문의 진위가 궁금해서 일이 별재미가 없었다.

그 당시의 귀금속공단은 도급제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분량의 원석을 가져가서 하루든 이틀이든 그 분량의 일을 끝내면 일의 작업량에 의하여 공임을 계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숙련공들은 미리 다량의 작업물량을 확보하여두고 빨리 마치면 수입이 그만큼 느는 우리 이야기로 뚜드려먹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공임을 반절이나 깎는다하니 일할 마음이 나지를 않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반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에는 겨우 견습공을 벗어나 다른 숙련공들의 사분의 일도 못되는 일을 하니 공임이래야 그냥 방세나 줄 정도였지만!

식자우환이랄까?

내가 위장취업자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사장실로 들어가 면담신청을 했다.

그 결과 공임을 반절 깎는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제품의 불량률도 강화하겠다는 것을 알았다.

작업장으로 돌아와 사실을 이야기하고 직원 둘을 데리고 사장실에서 담판에 들어갔다.

너무 길어 다음에 2부를 써야할 것 같다.

내가 빵장사를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당시 공돌이들의 착취현장은 다음 기회에 적나라하게 이야기 하겠다.

* 시푸르둥둥 : 예전에 경상도분 이시던 나의 어머니의 표현으로, 색은 약간 푸르스름하고 모양은 둥글둥글 하면서도 얼굴모양이나 형태가 부어서 푸르스름하게 뜬 모습을 이렇게 표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