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고 묻거든!
나는 이른 지금, 이 시간에 교외의 작은 산사에 와서 이글을 쓴다.
왜 사느냐고?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기 위해서이다.
산사는 내게 말이 없으며, 법당의 부처는 그저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러면서 “내가 너를 아니 그 답은 니가 찾거라!” 하신다.
찾기 어려워 물어보려고 왔건만, 이 미련한 나더러 찾으시라니!
겨울 대숲 속에서는 바람소리만 있더니, 지금은 숨소리조차 죽여 미동도하지 않는 대숲 속에서는 바람마저 잔다.
삶을 놓지 않고 죽어라 살려고 일찍 산에 오르는 이들과,
요란한 매미소리는 짝을 찾아 간단한 여름을 보낼 수가 없어, 혼신의 소리를 지르며 남은 목숨마저 버리고 있고, 이름 모를 산새들은 나무숲을 뒤지고 있다.
저 매미는 산다는 것을 어찌 생각하나?
이 여름만 지나면,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서 저리 마지막 혼을 쏟나?
저 새들은 숲속에서 단지 먹고 살 것들만 찾아 헤매나?
그냥 법당에 계시는 그분은, 미련한 나처럼 미련만 떨며 웃고 계신다.
“세상사 모든 고진멸도는 너의 업보이니라.”
“생노병사를 모르니 나도 여기 앉아있지 않느냐!”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씀만 하시며 그냥 미소만 지으신다.
내 눈에서는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데. 참 못되신 성정이시다.
왜 물으러 온 나에게 답은 못하고 눈물에 웃음으로 얼버무리나?
나도 저 옆에 앉아 버릴까!
대답은 없고 눈물만 난다.
그래서 누가 내게 왜사냐고 묻거든 나도 웃기만 해야겠다.
그 시인이 바로 부처에게 일찍 물어보고 깨달은 것이
“왜 사냐 건? 웃지요!”였던 것이다.
웃기위해서 내려가기가 싫은데.....
저 자리가 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