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와 나비 애벌레

나는 복스러운 수국 꽃을 가장 좋아하고, 꽃무릇을 좋아하고 그리고 봉숭아꽃을 좋아한다.

꽃도 예쁘고, 손톱에 물을 들일 수 있어서 좋고, 그냥 두어도 스스로 알아서 터져 종자를 퍼트려서 다음해에 이곳저곳에서 볼 수가 있어서 좋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가 좋아해서 우리 자식들 손톱에 일일이 공들여 예쁘게 물이 들 수 있도록 꼭꼭 묶어주시던 손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고, 그때마다 그동안 쌓아두셨던 당신의 꿈 한자리씩을 풀어 주셔서 더 좋았다.

그래서 우리 자식들은 모두가 봉숭아를 좋아했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봉숭아를 심었고, 지금쯤에는 봉숭아가 한창이어서 그 떨어진 꽃들을 모아서 손톱에 물들을 들인다.

우리 집 정원 한 켠에도 봉숭아가 있고 내 손톱은 빨갛다.

작년에 있던 봉숭아는 씨앗이 별로여서, 올해 서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료누나의 우량모종을 얻어다가 심어두고 대를 올려 꽃을 보기 시작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 탓에 봉숭아가 만발을 하여야 할 시기인데도, 꽃은 고사하고 꽃봉오리조차 잘 맺지도 못한다.

누나는 정성으로 아침저녁에 물을 주는데, 아침에 물을 주고 오후에 들어오면 어느새 봉숭아들은 시들시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면 해질녘에 다시 물을 주곤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 봉숭아가, 어느 날인가 아침에 물을 주고 온 누나가 봉숭아 한그루가 거의 대만 남았고 잎을 무엇이 다 갉아먹었다고 이상하다고 한다.

나가보았더니 그랬다.

간밤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벌레가 먹었는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살펴보자고 하면서 주의를 했더니, 다음 날은 그 옆의 나뭇잎이 그랬고 그 다음날은 그 옆의 나무가...

화가 나기도하고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포기마다 자세히 관찰을 해보았다.

범인을 잡았다.

호랑나비 애벌레였다.

요즘 시골에서도 나비가 흔치않으며, 특히 부전나비나 호랑나비는 보기가 더 어렵다.

한여름에 더운 날, 한 쌍의 호랑나비는 하늘로 날아올라 교미를 하여 알을 낳는다.

호랑나비가 그렇게도 많을 때, 나는 사랑하는 둘이서 서로 희롱을 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자주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었다.

마치 여행을 가는 들뜬 애인들처럼,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며 꼬리 날개 짓을 하고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 참 귀엽고 재미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하필이면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알을 낳아, 가시가 많은 그 속에서 부화를 한다.

마치 배추흰나비 애벌레처럼 아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호랑나비 애벌레는, 색이 좀 어두워서 여자아이들은 징그럽다고 만지지를 않았다.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연두색의 매끄러운 피부를 가져서 살살 만질 만 한데, 호랑나비 애벌레는 배추흰나비보다 크기도 훨씬 크고 모양이 좀 험상궂기는 하다.

하지만 가만히 잡아서 살살 애무를 해주면 머리에서 노란 촉수를 내어 향기를 낸다.

그것이 재미가 있어, 어렸을 적에 가시에 긁히며 탱자나무속에 있는 호랑나비 애벌레를 잡아서 가지고 놀고는 했었다.

이것이 자라서 마치 도롱이 애벌레처럼 고치를 짓고, 얼마 후에 탈피하여 나방이 되고 날개 짓을 하여 날개가 마르면 날아가는 것이다.

아주 신나고 재미있는 관찰 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골에도 탱자나무 울타리들을 가시가 싫고 손질하기가 사납다고 다들 쳐버려서 보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마치 위리안치당하고 있는 충신들의 초가처럼, 삥 둘러서 담장용 생 울타리로 많이 사용하여 개구멍 외에는 다른 잡것들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천연 요새였는데...

농약을 많이 사용하여 호랑나비나 흰나비가 특히 검은 부전나비는 아예 멸종을 하였는가 할 정도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사람들은 고층으로 화려한 아파트들도 많이 짓건만, 호랑나비는 집조차 없어 새끼들도 기를 곳이 없어 졌으니....

그래서 호랑나비를 보기가 어려워졌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울타리의 일부는 탱자나무인데, 자주 실펴 보아도 호랑나비 애벌레는 볼 수가 없었다.

하기야 어미가 있어야 애벌레를 볼 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호랑나비 애벌레가 세 마리나 우리 봉숭아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봉숭아 밭에서 간혹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 때에는 탱자울타리들이 있어서 먹을 것도 많고 은신하기가 좋은 곳이라 봉숭아에는 많지 않았나 보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이 그렇게 탱자나무 잎을 갉아 먹는다.

그런데 먹을 것이 부족하여 먹고 살려고 식성이 변하여, 새 메뉴인 봉숭아가 우리 정원에 있으니 겨우 남긴 자식은 길러야 하고 어찌하겠는가.

쌀밥대신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야 애미 구실이라도 하겠고....

그래서 봉숭아에 알을 낳아 그것들이 자라면서 봉숭아 잎을 갉아먹었는가 보았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잘 먹어서 자라고 나서 발견이 된 것이다.

봉숭아를 좋아해서 남의 집 예쁜 종자의 모종으로 구해서, 애지중지 가뭄에 물을 주며 기르고 있는 봉숭아에 하필이면...

누나하고 나는 갈등에 빠졌다.

어떻게 처리를 하지?

첫날에는 잡아서 닭을 주었다.

특식이라, 닭들도 처음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괴상한 것을 보고는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용감한 암탉이 감히 장닭도 건드리지를 못하는 애벌레를 물고 가 버렸다.

며칠 후에도 자라서 보이는 애벌레를 또 잡았다.

이번에는 멀리 버리기로 하였다.

먹을 것을 못 찾아 굶어 죽을른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새로운 메뉴에 적응하여 더 잘 살아 멋진 호랑이 나비가 되어 대장이 될른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면서.

본래 힘들어 자란 애들이 나중에 큰일을 하는 놈들이 더러 있더라는 경험을 실어서...

글쎄, 요즘은 금수저가 흙 수저보다 떵떵거리기는 하고,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아직 나비들이야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섞어서....

그런데 그 녀석이 호랑이 나비가 되려면 엄청난 고난이 있을 건데..

내가 잡아 버린 그 아이가 호랑나비의 대장으로 정말 쑥쑥 잘 자라준다면 내가 덜 미안 할텐데 ....

하필이면 왜 봉숭아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봉숭아보다 너를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