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애비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마 이번이 두 번째인가 보다.

처음엔 네가 서울대학에 합격하여, 고향을 떠나고 나서였고. 이번이 두 번째인가 보다.

첫 번 것은 성인이 되어 부모 품을 떠나 살게 된 너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에 대하여 노파심에서 썼던 것이고

이번 것은, 네 엄마가 워낙 성화를 대어서 나도 못이기는 척하고 써 보는 것이란다.

왜 난들 네가 보고 싶지 않겠니?

그런데 오늘 저녁 마당 평상에 나가 앉아, 환한 달을 보니 니 엄마는 니가 더 보고 싶었나 보다.

오늘이 추석이잖니?

우리말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풍성한 가을에 더구나 가뭄 끝이라 그런지 유달리 밝은 달밤이니....왜, 안 그러겠니?

올 여름은 참으로 덥고, 가물어서 니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청포도도 별루라 너랑 애미랑 유리 먹으라고 저번에 보냈던 그런 풍신이란다.

그래도 예전보다 수확은 적었어도 당도가 높으니, 백화점에서 사먹는 것 보다야 못 생겼지만....

엄마는 너를 생각하며 봉지로 잘 싸서 정성껏 키운 것이니....

그래도 올해엔 날이 뜨거워서 나락농사는 대풍이란다.

대풍이라 추곡수매가격이나 더 내려가지나 않을른지 걱정이구나.

하기야 요즘 밥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 려고?

나도 이제는 힘도 겹고....

이제는 논농사는 접어야 하려나 보다.

니가 이번 추석에도 회사일 때문에, 긴 연휴가 있어도 회사를 비울 수 없어 집에 오지를 못하는 줄 알지만

큰누나, 작은누나 그리고 니 동생 복실이 까지 오늘 저녁에도 행여나 하며....

니 엄마는 며칠 전부터, 삽짝 밖에 개소리만 나도, 지나가는 자동차소리만 들려도 큰길을 내려다보니 ....

나는 모르는 체 했다만, 너를 기다리는 모양이 아니겠니?

니가 저번에 전화로, 이번 연휴에도 저번처럼 미국지사에 다녀와야 한다고 알려왔을 때...

나나 엄마는 철수아버지 김 영감에게 우리 아들이 없으면 회사에 문제꺼리가 있어, 이번 추석에 미국에 간다고 했더니...

김 영감은 철수도 일본에 간다고 자랑하더라.

이놈의 영감은 걸핏하면 지 아들 철수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지 아들은 겨우 과장밖에 안되면서...

그래서 나는 우리 아들은 벌써 부장이라고 뻥을 쳤더니 기가 팍 죽더라. ㅎㅎㅎㅎ

니가 학교 다닐 때도 철수보다 공부도 훨씬 잘 했었잖아.

난 항상 그것이 자랑이었고

니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남겨주셨던 밭이라도 팔아서, 너를 서울로 보내 대학에 다니게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게 생각했단다.

그 땅은 요즘 우리 마을에도 유행인 전원주택인지 하는 것이 만들어져서,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멋진 집을 지어서 살고 있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가끔은 니 할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란다.

그리고 또 미안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단다.

니 큰 누이 복희 말이다.

작은누나 복순이야 지가 먼저 공부하기 싫다고 미용을 배워서, 지금 이것으로 취미 겸 용돈벌이라도 하고 있지만, 니 큰 누나는 그래도 작은 면이지만 어릴 때부터 일등을 놓치지 않고 공부를 잘 해서,

그렇게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교대를 나와 교사라도 해서 이제는 퇴직하여 아이들 잘 되는 재미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그 때 서울소재 대학에 가질 못한 것이 섭섭할 때가 있나 보더라.

이제는 잊어도 될 때가 되었건만....

그 때마다 난 너의 큰 누이에게 미안했고....

그래도, 이번에 니 조카 주환이가 고시에 합격을 하여서 위안은 좀 되는가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소녀 적 꿈을 못 내버리고 시를 쓴다고 ....

그때 난,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그 밭을 항상 니 몫이라고 생각하여 절대 건들지 않기로 작정을 했었거든.

그래서 결국은 너의 몫으로 사용을 했었고.

이제는 막내 복실이 마저 공무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제 니 엄마하고 나는 어지간히 고된 짐을 벗어도 되었구나.

내가 조그만 밭뙤기와 손바닥만 한 논으로 여생을 보내는 것은, 원래 농투산이인 나의 마지막 취미이고 고향이기 때문이니 우리들이 고되다고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잘 되어 각자의 가정을 건사하는 것만 보아도 난 만족하고, 니 엄마도 그렇단다.

자주 보고 싶고, 특히나 명절이면 고향 찾아오는 이웃집 아이들이라도 볼 때면....

하지만 니들에게는 더 큰일들이 많으니 그것이면 되었다.

그래도 니 엄마는 달이 밝으니 아래 신작로에 차가 달려오면 행여 너인가 하니 내가 옆에서 보기가 딱해서....

그래서 젊으나 늙으나 엄마인가 보구나.ㅎㅎㅎㅎ

지금도 너에게 편지라도 써 보내라고 그렇게 성화를 대더니, 아까 철수 엄마하고 막걸리 한잔하고는 지금 편지 쓰는 것도 모르고 옆에서 코만 곯으면서 시끄럽게 자는구나.

이제 니 엄마도 많이 늙어 고단한가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이 편지를 읽어 줘야할까 아니면 태워 버려야할까... 기다려 봐야겠다.

난, 니가 자랑스럽단다.

이 시골구석에서 애비, 애미가 잘 건사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멋진 헌헌장부가 되어 미국으로 일본으로 두루 돌아다니는 인물이 되었으니 누가 부럽겠느냐?

이제 엄마와 나는 많은 일을 제대로 한 것 같구나. 고맙다.

니 누이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그래서 비밀 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아들이 더 좋더구나. ㅎㅎㅎㅎㅎ

비밀이다.

올 설날에는 출장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눈이 안 와야 올 수가 있을 텐데....

기회가 되면 유리 애미하고 유리데리고 한번 다녀가면 좋겠다.

니 엄마가 유리랑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그리고 가끔이라도,

니 누이들한테 전화라도 해주고 유리애미 목소리라도 듣게 해 주려무나.

이제 그만 쓸란다.

아미 지금쯤이면 미국에서 일을 보고 있을 것이구나.

건강하게 일 잘 하고 전화라도 자주하자꾸나.

추석날 저녁 애비가 몇 자 적는다.

( 이 글은 긴 명절연휴가 되면 회시 핑계를 대며 외국여행을 가는 아이들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엄마를 빗대어 쓴 편지글입니다.

긴 연휴에 시골의 부모형제들에게 핑계를 대며 외국여행을 가야만하는 것이~~~~

각자 여러분의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