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역시 가을은 가장 풍요로운 철임에 틀림이 없다.

예전처럼 농경사회가 아니어서 수확의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계절은 아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후에... 역시 하늘은 맑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불렀고, 이 계절에는 하는 일도 많았다.

오늘 우리도 가을 운동회를 하였다.

어릴 적 초등학교 때에는, 한 때는 봄, 가을로.. 소운동회, 대운동회를 했었다.

특별히 가족들이 밖에서 모일 수 있는 행사가 흔하지 않았던 때 인지라,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봄가을의 운동회가 모처럼 식구들이 마음 놓고 웃고 떠들 수 있는 날 이었다.

그날이 되면, 평소에는 잘 먹어볼 수가 없었던 김밥이 우리들의 주 메뉴이고, 어쩌다 얻어먹을 수 있는 사이다에 생과자에....

엄마들도 이 날만은 자식들에게 아끼지 않고 먹이시려고 들 하셨다.

그래서 대운동회인 가을운동회는, 풍요로운 계절 탓에 소풍이나 소운동회인 봄 운동회보다 더 풍요롭고 신나는 날이었던 것 같다.

풍선 터트리기, 오자미 던져서 박 터트리기, 달리기.....

그것도 특별히 엄마하고 달리기, 선생님하고 달리기 등...

그날이 아니면 못해 볼 이벤트들이 많아서, 그날은 넘어지고 뒹굴어도 아무런 흉이 되지를 않았고...

그래서 우리 누나처럼 달리기만 하면 육년을 항상 꼴찌만 해서, 상이라고는 고무도장이 찍힌 공책 한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마냥 즐거운 날 이었다.

이번에는 삼등이라도 해 보라는 엄마의 격려를 무시하고, 늘 들어올 때면 눈물이 글썽거리고는 하는 누나는~~

그래도 들어와서는 맛있는 김밥을 잘 먹었었다.

나는 운동회 날이면 얻어먹는 재미로 좋았던 날이지, 실은 정말 싫은 날 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여름이 다 지나지 않아서 햇볕은 따가워서, 그날이면 오히려 등교하는 날보다 먼저 학교에 간다.

일찍 학교에 가서 커다란 늙은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라도 자리를 잡아야 시원하게 밥이라도 먹을 수 있지, 늦게 자리를 잡으면 뙤약볕에서 돗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엄마, 누나는 어제 밤부터 김밥을 말고, 나는 아침에 일찍 자리를 잡아야 내가 하루 종일 시원하게 앉아있을 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 운동회를 오늘 늙은이들이 하였다.

이름 하여서 총 동문회 체육대회이다.

일 년에 한번, 가을에 중 고등학교 총 기수들이 모여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운동장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그때와 다른 것은...

우리들은 본부석 옆의 최 상석에 자리를 잡고, 기수도 밝히지 않는 열외의 그냥 고참의 선배들이지만, 아주 젊은 기수들마저 별로 참석을 하지 않아, 우리 때도 그랬나하고...

숫자가 적은 것을 보니 젊은 애들이 학교에 대한 애정이 없는지, 아니면 요즘처럼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졌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ㅎㅎ

그러다 눈을 돌려 친구들을 보면, 자주 보이던 친구가 보이지를 않는다.

물어보면 병원에 있다고 한다. 벌써!

부고야 메일로 연락이오니 알 수 있지만, 병원에 들아 가 있는 것은 친하게 자주 보는 친구사이가 아니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운동장에서 즉석으로 위문금걷기가 시작 된다.

그리고 운동회가 끝나면, 병원에 얼굴이라도 보러간다.

그때의 운동회와 다른 풍경들도 있다.

예전에는 엄마들이 보따리 채 들고 오시던 먹을거리 대신에...

지금은 그냥 몸만 가도 먹고 마실 것이 풍요로워서...

배가 불러서, 취해서 마시기가 싫건만..

그래도 친구들이 서로 주는 넉넉한 인심이 담긴 먹을거리를, 권 커니 자 커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아껴먹던 김밥과 사이다를, 더 먹고 싶어도 눈치를 보았던 생각이 나서 웃으며...

나이 들어 넉넉해진 인심을 우정과 함께 느끼며, 취하도록 마시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이미 간 친구들과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친구들의 잔을 따라 두고서..

후배들이 찾아들 와서 안주를 안겨주고 간다.

어떤 놈은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데 후배라고 인사를 한다.

선배들도 나를 보고는 긴가민가하여 자기들이 먼저 인사를 한다.

수염길이와 색깔만 보며~~~ㅎㅎㅎㅎ

하극상이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