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과 커뮤니케이션

내친김에 오늘은 선유도를 가기로 하였다.

여름만 되면 비경의, 신선들이 노니는 섬이라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각광받으며 선전되던 선유도를 지척에 두고도 그동안은 한 번도 간적이 없었는데, 새만금이 개발되어 다리가 놓이고 나서 내차로 다닐 수가 있게 되어 가끔 눈요기라도 할 수 있다.

초입을 조금 벗어나면 보이는 바다풍경은, 가히 비경이고 신선들이 노실만 한곳이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지고 널려있는 쓰레기와, 길을 닦으면 개가먼저 지나간다고 하드니 벌써 소음에 신선은 떠나셨을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개발이고 무엇을 보존하여야 할 일인지는, 어디서나 돈으로 우선 계산되어지는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섬도 아니지만 바다의 가을을 보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새만금 컨벤션센타에서 우수중소기업 박람회를 하고 있다고 거기가자고 전화가 왔다.

마침 선유도를 갈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곳을 들러 함께 동행을 하잔다.

그리고 선배도 함께 가시겠다고 하여 셋이 나섰다.

먼저 들렀던 컨벤션션타에서는..

우수 중소기업 박람회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우수중소기업은 모두가 먹을 것들만 만드는지?

개량한복을 파는 곳 두어군데 외에는, 전부 야시장에나 나와야하는 먹을거리 장터일 뿐 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둘러보았지만 역시였고..

뒷마당에서 펼쳐진 전자바이올린연주를 하는, 날씬하고 예쁜 그레이스만을 보고 듣고 나왔다.

바로 새만금으로 진입하였더니, 박람회에서 나온 차들과 시내에서 들어온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꽁무니를 따라 가보니, 그 많은 차들이 전부 선유도로 들어가는 차들이라..

우리는 대열에서 벗어나 변산반도로 방향을 바꿨다.

그 많은 차들이 들어가서 나올 때는 서로 엉긴다고, 몇 번을 가보았던 선배의 제안이었다.

그래서 핸들을 돌리며 나는 내변산을 일주하자고 했더니,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내소사만 들러서 점심 후 벽골제 학당만 보자고 하신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곧추 나아갔다.

전날과는 달리 날이 상당히 포근하고 온화해서, 변산으로 가는 차들도 많을 줄 알았는데... 선유도 진입로를 벗어나니, 군데군데 길가에 주차하여 놓은 낚시꾼들의 차외에는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거칠 것 없이 신나게 달리는 차안에서는, 새만금 개발과 선유도의 장래와 우리의 관광정책에 관한 학구열에 가득한 토론을 벌이느라 길을 여러 번 놓치고서야 내소사에 당도하였다.

내소사 주차장역시 관광버스를 비롯한 차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민박마을이 있다는 선배의 말에 뒤로 돌아갔다.

여러 번 와보았다는 선배의 제의로 청국장을 전문으로 한다는 식당에 들렀다.

밖에서는 쉽게 보이지도 않고, 아는 사람들만이 뒤쪽에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지 그냥 주차장에 주차하여 절만 배불리기가 십상인 위치였다.

본래 오래 살던 원주민들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하여, 민박도하고 음식들도 파는 그런 곳 들이었다.

주인은 역시 되바라진 장사꾼이 아닌 듯했다.

나이 들면 추억만이 남는다고,..

선배가 예전 잘 나갈 때 이곳에 왔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지인이 지금도 그 동네에 사신단다.

식사를 하고 선배는 그분을 만났다.

막걸리 몇 사발과 섞어, 옛 얘기에 취해있는 선배를 식당에 남겨두고 우리는 동네구경을 나섰다.

내소사를 찾는 관광객들과, 뒷 내변산으로 등반을 하시는 분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마을에, 인공적 미와 그래도 조금씩 남아있는 시골의 맛을 느끼면서 가을의 과일인, 집집마다 달려있는 노란 감들이 정겨웠다.

그리고는 벽골제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는 선배의 화려했던 옛 시절이 이야기의 소재였고...

우리 둘은 듣고 웃어주며 맞장구만 쳐주었다.

역시 나이가 들면 군대얘기부터.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까지가 이어지는가보다!

정작 벽골제에 도달해서는, 몇 잔술과 추억에 힘들이 들었는지 학당훈장님을 보고 가잤더니 그냥 가잔다.

그래도 약속을 한 거라 잠깐이라도 들르려고 찾아갔더니, 내방객과 방에서 담소 중이시라 얼굴도 못 뵙고 그냥 나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어제 보았던 코스모스들이 반기며 구면이라고 아는 체를 한다.

내려서 애들과 사진이라도 찍어서, 나중에 나도 추억의 이야기 거리로 증거하려고 뒤를 돌아 보았더니 ...눈을 감고 있었다.

선배도 옛 생각을 하면, 지금이 참 외로웠을 것이고 세월의 흐름이 야박했는지도 모른다.

역시 여행은 커뮤니케이션이고 필링이다.

따뜻 하고 서로 외로운 가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