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 덕에 나팔 불다.

우리 속담에 “원님 덕에 나팔 분다.”라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남 덕에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나의 나팔에 대해서 고백할게요.

“돼지머리 얼마나 해?”

“왜? 돼지머리는 뭐 할려고? 먹고 싶어? 한 오만원은 줘야 쓸 만한 걸 살걸....”

“응 ,복지관 풍물패가 처음으로 야외로 나가는데...

내가 형님한테 돼지머리라도 사서 재미있게 놀고 돈을 좀 모금해보라고 했거든.”

“무슨 말 여?”

“풍물패동아리를 만드는데..농기가 필요해서....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바탕 놀면서, 겸사해서 종자돈을 좀 모아보시라고 아이디어를 냈거든. 그래도 돼지머리라도 있어야 분위기를 잡지. 이번 기회에 사무실 사람들에게도 좀 알려서 돈 좀 얻어내라고~~~”

며칠 전에 저녁을 먹으며 누나하고 한 이야기이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을 하면서, 힘이 들어도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누나하고 저녁 식사시간에는 밥상머리에서 소주 반주를 마시며 그날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로 나눈다.

노인복지관에 다니면서 서예와 풍물을 배우고 영양가있게 세월을 보낸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복지관에서 소일하여야 할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상대적으로 어리다고 볼 수 있는 내가 노인복지관과 인연을 맺고는 아주 신나는 노후시간을 즐기고 있다.

워낙 악필이어서, 시험답안을 보신 교수에게 불려가 혼나기도 할 정도의 필력인 나라서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서예는 언감생심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치기가 생겨 서예공부를 시작해보려고 작정을 하고 과감히 복지관에 등록을 하였었다.

서예에만 너무 몰입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기에, 대학시절 학교 행사 때 마다 운동장에 나와 신나게 놀던, 부럽던 풍물도 겸사 배우기로 하였다.

멋진 포트폴리오!

정신적 작업과 육체적 작업의 조화라 생각하여, 서실 선배들도 부추겨 풍물 반으로 유도하였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생소해서 조금 망서러지고 낯설기도 했지만,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인지라 생각했던 대로 재미있었다.

이제는 나이 때문인지 욕심만큼 빠른 진척은 볼 수가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미라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즐기기로 하였다.

재미있고 신났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석 달을 병원신세를 져야하였다.

소아마비장애로 다리가 약한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근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몸소 느낄 정도였으니까...

내가 늙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석 달의 병원생활은 내게 노인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평소에 노인문제와 장애인문제에 관심이 있어, 50이 넘어 사회복지과에 편입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직접 내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그 환자들과 부대끼며 보는 현실은 더욱 생생하여서 교과서나 사회복지사 자격증보다도 더 가치 있는 살아있는 실습이었다.

그렇게 병원생활을 하는 중에도, 서예와 풍물을 함께 하시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는 선배님이 자주 문병도 오시고 전화도 해주셔서, 복지관의 흐름도 알고 우리 서실이나 풍물반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 덜 심심했고 고마웠고 ....

그래서 퇴원하고 집에서 하는 운동으로 회복기간을 허비할 수 없어, 운동 겸 복지관에 다시나가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미루어졌던 서예공부도, 매일 복지관에 가장 먼저 등교? 하여 서실에 나가 연습하고..

풍물도 집에 장구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틈틈이 즐겼는데...

풍물은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앉아서 가락을 위주로 한 풍물이지만, 풍물은 속성상 걸어 나가지 않을 수 없고 또 복지관의 풍물시간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서실의 선배들이 풍물 반을 주도하고 있고, 풍물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전해들을 수 있어서 아직도 관심을 버리기가 아쉬워 한마디씩 거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동아리를 만들려고 애를 쓰시는 선배께서 야외수업을 해보자고 하셨단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동아리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서로 나누었고, 특히 농기를 만들어 그 바탕 문구까지 생각하며 금강복지관 풍물 반을 한번 세워보자고 이야기했던 것이, 결국은 내가 풍물패를 떠나는 결과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서운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농기라도 만들면, 내가 입원해있던 병원 원장친구에게 봉사공연을 섭외해주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이번 첫 야외수업을 한다고 하시기에,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이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옳겠다고...

따라서 이번 기회에 분위기를 만들어 돼지머리라도 하나 올리고 모금함이라도 만들어, 종자돈이라도 만들어 보시라고 아이디어를 내 보았다.

노인의 四苦에는 孤獨苦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홀로 살아가기가 어렵고, 더구나 나이가 들어 옆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하나, 둘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더 마음이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세대 차이를 주장하는 자식들이나 손자들과는 융화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들도 곁을 쉽게 내어 주지도 않고, 소외되고,,,

따라서 동시대를 함께 살며, 옳든 그르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어우러져야 마음이 자유스러워지는 것인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예, 풍물 얼마나 멋진가?

서예는 수 백년.. 아니다, 인류 태초부터 있었던 문화작업이고...

풍물 또한 우리의 흥과 한을 담아내는 “혼의 그릇”이니, 잘하면 어떻고 조금 미흡하면 어떠랴.

서로 그 시간만이라도 만사를 다 잊고 어우러져 한바탕 웃으면, 그것이 인생 노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인생순회의 일막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 누나가 병원에 입원하였다.

자식들이 다 멀리 떨어져 살고 또 큰 병이 아니니 부담주기 싫다고 알리지 말기를 바라니, 이번에는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저번에는 누나가 내 보호자였지만...

병상에서 갑자기 10만원을 준다.

돼지머리라도 사다 주라고...풍물패이야기를 생각해두고 있었던가 보다.

그런데 말이다.

돈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견물생심? 그런가?

어제 운전하고 병원에 오는 중에, 내 선글래스의 눈알이 빠져버려 안경을 바꿔야 할 텐데...

조금씩 나빠지던 시력이 요즘은 5개의 안경이 모두 시력이 맞질 않는다.

더구나 날씨가 더워져 햇살이 강해지니 운전을 할 때는 안경을 끼지 않으면 눈이 부시고 눈물이 나서...

그래서 안경을 바꿔야하는데,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에라, 돼지머리대신 내 머릿속 눈이나 간수 해야겠다~~~

그래서 이 돈으로 선글래스를 장만하기로 작정했다.ㅎㅎㅎ

나도 늙어가니 노욕이 생기는가 보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고 순전히 노인의 빈고 때문이다.^^^^

나중에 선배하고, 누나에게도 자백하면 된다.~~~

아무튼 풍물패 파이팅이다.

다음에 엉뚱한 돈 생기면, 그 때에는 돼지머리를 생각할게^^^

만일 쓸 곳이 없으면 말이야~~~~약속하마.